그래 그 때 나는 헬스장을 정말 열심히 다녔다. 회사에 있는 헬스장 무료 사용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녔으니 그것도 2년 넘게 말이다. 이정도 했으면 몸이 달라져야 정상일텐데… 와이프는 맨날 헬스장을 가는 거냐고 의아해 했다.
코로나로 계속 다니던 헬스장도 끊고 재택으로 바뀌어 집에서 일하다 보니 내 스마트워치가 보여주는 하루 걸음 수는 1000을 안 넘는 날들도 많았던 시간. 그 사이 나는 체중의 앞자리가 한 번 바뀌더니 다시 바뀔려 했다.
맨날 더 먹으라던 어머니가 저녁을 덜 주시고 그만 먹으라 얘기했을 때. 옷 라지 사이즈가 꽉 끼는 느낌에 엑스라지가 맞아 보이기 시작할 때. 운 좋게도 때 마침 아파트 헬스장이 오픈하여 고민도 없이 바로 다니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하루 하루 근육이 늘어가는 것이 보인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더 열심히 더 오래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무게를 계속 늘렸을 뿐. 어떤 무게를 하다 몸에 익으면 바로 한 칸 더 올렸을 뿐이다. 그랬더니 이번엔 정말 근육이 늘기 시작했다. 그냥 한 칸 더 올렸다고 했지만 사실 그게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50에 하던 걸 55로 하는 순간, 몸은 불편함을 느끼고 바로 아우성을 친다.
이게 머야? 이건 내가 견딜 수 있는 무게가 아닌 거 같은데.
그것도 잠깐 3일 정도만 하면 바로 또 내 몸은 적응해 버리고 다시 한 칸을 올리고 그렇게 3달도 안했는데 근육이 늘은 것이 눈에 보인다.
인간이란 이렇다. 편안하면 바뀌는 게 없다. 데드리프트 150정도 하는 사람은 분명 힘이 좋은 사람이리라. 하지만 맨날 헬스장에 가서 150만 든다면 근육은 늘지 않는다. 그냥 편안하게 해 버리고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고로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맨날 이런 일 저런 일, 스트레스 받는다, 힘들다 아우성 치지만, 직장에서는 150치는 사람에게는 150의 일만 준다.
직장 생활 오래 하면 알게된다. 버그가 발생되면 대강 어떤 문제인지 나는 안다. 내가 팀원에게 지시할 때면 쉽게 고칠 사람, 시간이 좀 걸려도 해결할 사람, 못 고치거나 잘못 고칠 사람이 바로 머리 속에 그려지고 빠르게 처리할려면 180치는 사람에게, 천천히 해도 되면 150치는 사람에게, 하지만 못 고칠 사람에겐 아예 줄 생각을 안한다.
처음 새 직장에 가면 헬린이처럼 모든 게 버겁지만 1~2년만 지나면 모든 일들이 익숙해 지고 그 뒤는 그저 내 수준에 맞는 일만 처리하게 된다. 힘들다고? 과연 힘들까? 맨날 똑같은 일, 똑같은 강도에, 똑같은 사람들. 4~5년 그 뒤 10년. 과연 발전이 있을까?
직장생활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새 사람이 팀에 들어오는 것이다. 에이스가 들어오든, 폐품이 들어오든, 팀장이든, 사원이든. 변화는 스트레스다. 현상 유지가 가져다 주는 편안함. 매년 조금씩 늘어가는 연봉. 20년은 우습다. 아무 변화 없이.
헬스장 10년 다녀도 몸 좋다는 소리 못 듣는 사람이 있고, 직장생활 10년 해도 능력이 안 오르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깨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만 있을 뿐.
그런데 사실 대다수가 그렇다. 길에 다니는 사람 중 헬스장 안 다녀 본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소수만 몸짱이다. 직장인 중에 실력이 계속 느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 그냥 하는 것만 하고 새 프로젝트 해 볼래 라고 물으면 극구 사양한다. 자신은 못한다며. 소위 소수만 에이스로 영전한다.
헬스장에 가서 스쿼트 10키로만 더 껴도 몸은 금세 지치고 원래 하던 세트를 채우지 못하며 다칠 거 같은 불안감, 주저앉을 거 같은 공포감에 휩사인다. 그렇기에 무게를 올리려 할 때마다 내면에서는 이렇게 속삭인다.
오늘은 좀 피곤하고 충분히 무게도 치고 있으니 오늘은 어제처럼 하고 끝내면 되잖아?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은 가지만 근육은 늘지 않는다. 어제 하던 일, 작년 하던 일, 3년전 쓰던 기술, 일년 이년 삼년. 시간은 가지만 실력은 늘지 않는다. 어제 같이 일한 사람, 작년 같이 일한 사람, 5년 같이 일한 사람. 가끔 거슬려도 사람은 괜찮고 서로 예의 지키니 지낼 만 하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10년.
어느 누구도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바꿔야 할 것은 없기에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사고가 터지고 견딜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생존의 문제로 바꾸기야 하겠지만, 대부분 그렇게 별 문제 없이 시간은 잘도 흘러가며 그러다 보니 서른, 마흔, 쉰이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사람들에 박수 쳐 주지만 대부분 속으로 생각한다. 에구 힘들게 왜 저래? 먼 문제가 있으니 저러지. 대부분이 그렇다. 유지하면 편안하다. 생존의 문제가 아닌 경우 대부분 현재가 만족스럽다. 맨날 하던 일이 편하고, 맨날 먹던 것이 맛있고, 맨날 하던 취미가 재미있다.
변화가 없으니 편안하고 정체되었으나 익숙하며 유지가 되니 바꿀 맘이 없다. 그렇게 마지막 도전 이후 5년이 지났다. 코로나가 날 주저 앉힌 것이 큰 일을 하긴 했지만 바꾸질 않아도 괜찮으니 바꾸질 않는다.
고로 발전이 없다.